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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발(喇叭)은 흔히 나팔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모양대로, 주둥이 쪽은 좁고 반대쪽은 넓어지는 형태의 금관악기이다. 교과서적으로 나발은 지공이 없어 선율을 내지 못하고 한 음만 낸다고 한다. 그러나 국악 연주자와 서양음악 연주자가 섞여 있는 군악대나 경찰악대 같은 데서, 호른이나 트럼펫 연주자가 장난삼아 국악기 나발로 자연배음(natural harmonics) 연주를 시도해 성공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나무로 만든 스위스의 알펜호른(Alpenhorn)도 이와 같이 자연배음을 낼 수 있다. 나발은 원천적으로 한 음만을 낼 수 있는 악기는 아니고, 한국음악에서 굳이 자연배음을 내지 않고 한 음만 내는 쪽으로 특화 또는 퇴화한 셈이다. 농악의 나발은 지역에 따라 오동나무나 대나무 등으로도 만들었고 길이에 따라 대각(大角), 중각(中角), 소각(小角)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대부분 엇비슷한 길이의 놋쇠로 된 나발을 쓴다. <대취타(大吹打)>와 농악 등으로 쓰임이 축소된 데 비해 명칭은 각(角), 땡가리, 땡각, 영각, 고동, 목고동 등으로 다양하다. 호른과 트럼펫류 악기의 기원은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 분포하는 뿔나팔이다. 한국의 나발도 각(角, 뿔)이라는 명칭에서 보듯 처음에는 뿔나팔이 주를 이루었고, 놋쇠 나발이 일상화된 뒤에도 타성적으로 나발수를 취각군(吹角軍)이나 취각수(吹角手) 등으로 부르기 일쑤였다. 나발의 전신인 뿔나팔은 고분벽화의 행렬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 안악3호분 벽화에는 대각을 연주하는 인물이 보인다. 『고려사(高麗史)』, 『악학궤범(樂學軌範)』 등 본격적인 음악 저서들에서는 나발을 정식 악기로 다루지 않았다. 그보다는 주로 군대나 의장(儀仗) 관련 문헌들에서 나발에 관한 정보를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1795년 정조 의 화성(華城) 행차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의 반차도에서는 대각수와 나발수가 함께 편성되어 있다. 국왕이 친히 군대를 사열하고 훈련시키는 대열(大閱)의 절차를 정한 <대열의주(大閱儀注)>에도 “군령을 내릴 때는 대각을 불어 경계하게 하며, 싸움에서는 소각을 불되, 진퇴(進退)를 알릴 때는 대각을 급하게, 교전을 알릴 때는 소각을 급하게 분다”라는 식의 상세한 규정이 있다. 19세기 말 서구식 군대와 군악대가 도입되면서 군영에서 나발을 사용할 일이 없게 되어, 나발은 현재 전통음악인 <대취타>와 복원 행사, 일부 농악 등에서만 연주된다. 국립국악원 <대취타>에 쓰이는 나발은 길이 약 120㎝, 지름 15㎝, 마우스피스의 지름은 약 3㎝이다. 세 토막(혹은 두 토막)으로 나뉜 관을 접어 넣으면 그 길이는 약 60㎝이다. 몸체의 길이가 규격화되어 있지 않아서 음고가 악기마다 약간씩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