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청가 중 '추월만정~심봉사 눈뜨는 대목'
아니리)
그때여 심황후는 맹인 잔치를 배설해 놓고 부친을 기다릴적
창)
그때여 심황후는 모친생각 간절하여 자탄으로 울음 울제,
이 잔치를 배설키는 부친을 위함 인디 어찌하여 못 오신고
내가 영영 임당수에 죽은 줄 아르시고 애통해 허시다 세상을 버리셨나
부처의 영험으로 완연히 눈을 떠 맹인 축에 빠지신가?
오시다가 노변에서 무슨 낭패 당허신가
오늘 잔치 망종인디 어찌하여 못 오신거나
신세 자탄으로 울음 운다
아니리)
이렇다시 자탄을 하시다 외부상서 불러 분부하시되
오늘도 오는 소경이 있거든 생명을 낱낱이 받아 적되
황주 도화동 사는 심학규라 하는 이 있거든 별궁 안으로 모셔 드려라
그때여 심봉사는 아침밥을 먹고 맹인 잔치에 제일 말석 참여하였나니
정원사령들이 나와 봉사의 성명을 차례로 물어 갈제
심봉사 앞에 당도하야,
이 봉사 성명이 무엇이요?
예 나는 심학규요
심맹인 여기 계시다 허고 외치며 심봉사를 뫼시고 별궁 안을 들어가니
그때여 심황후는 언간 용궁에 삼년이 되었고
심봉사는 딸 생각에 어찌울고 세월을 보냈던지 더욱 백수 되었는지라
심황후 물으시되
창)
그 봉사 거주 성명이 무엇이며 처자가 있는지 물어 보아라
심봉사가 처자의 말을 듣더니 먼 눈에서 눈물이 뚝뚝뚝 떨어지며
예, 예, 소맹이 아뢰리다 예 소맹 아뢰리다
소맹이 사옵기는 황주 도화동이 고토옵고 성명은 심학규요
을축년 삼월달에 산후달로 상처하고, 어미 잃은 딸 자식을
강보에 싸서 앉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동냥 젖 얻어 먹여
겨우 겨우 길러내여, 십 오세가 되었으되
이름은 심청이요 효성이 출천하야 그 애가 밥을 빌어 근근도생 지낼 적에
뜻밖의 중이 찾아와서 공양미 삼 백석을 몽운사로 시주하면 소맹이 눈을 뜬다 하니
효성 있는 딸자식이 남경장사 선인들께 몸이 팔려 임당수 제수로 죽은지가 삼년이요
눈도 뜨지 못 하옵고 자식 팔아먹은 놈이 살려 두어 쓸데있소
당장 목숨을 끊어 주오
심황후 거동 봐라 이 말 지듯 말 듯 산호주렴 걷쳐버리고,
부친 앞으로 우루루루루 아이고 아버지
심봉사 이 말 듣고 먼 눈을 휘번덕 거리며
누가 날 더러 아버지라 하여 나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오
아버지라니 누구여 무남독녀 외딸 하나 물에 빠져 죽은지가 우금 삼년인디
아버지라니 이거 웬말이여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아버지 눈을 떠서 어서어서 저를 보옵소서
임당수 빠져 죽은 불효여식 심청이가 살아서 여기 왔소
아버지 눈을 뜨셔 어서어서 청이를 보옵소서
심봉사 이 말 듣고 먼 눈을 희번덕거리며 예이, 이것이 웬말이냐
내가 죽어 수궁을 들어 왔느냐 내가 지금 꿈을 꾸느냐
이것이 참말이냐 죽고 없는 내 딸 심청 여기가 어디라고 살아 오다니
웬 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 보자 아이고 갑갑허여라 내가 눈이 있어야 보지
어디 내 딸 좀 보자 두 눈을 끔적 끔적 허더니
눈을 번쩍 떴구나
아니리)
심봉사가 이렇듯 눈을 뜨고 보니 세상이 해적해적 허구나
심봉사 눈 뜬 바람에 만좌 맹경이 모두다 백평으로 눈을 뜨는디
눈 뜨는 데도 장단이 있던가 보더라
창)
만좌 맹인이 눈을 뜬다 전라도 순창 담양 새갈모 띠는 소리라
짝 짝 짝 허드니마는 모다 눈을 떠버리난디
석 달 안에 큰 잔치에 먼저와서 참례하고 내려가든 봉사들도 저그 집에서
눈을 뜨고 미처 당도 못한 맹인 중로에서 눈을 뜨고
가다가 뜨고 오다가 뜨고 자다 깨다 뜨고
울다 웃다 뜨고 헤매다 뜨고 떠 보느라고 뜨고
앉아 뜨고 서서 뜨고 무단히 뜨고 실없이 뜨고 졸다 번 듯 뜨고
눈을 꿈적거리다가 뜨고 눈을 비벼 보다가도 뜨고
지어 비금주수라도 눈 먼 짐승도 일시에 눈을 떠서 광명 천지가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