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창작무용 이전 다음

2014년 국립국악원 무용단 하반기 정기공연: 사제동행[2014.09.26.] 마스터본 - 13. 춤, 그 신명(김매자 재구성안무)

31 0 0

0
  • 기록 분류무용>창작무용 
  • 기록 일시2014-09-26 20시
  • 기록 장소국립국악원 예악당
  • 소장처국악아카이브실
  • 기록유형동영상
  • 저장매체스토리지

내용

○ 2014년 국립국악원 무용단 하반기 정기공연: 사제동행[09.26.]의 열 세 번째 프로그램 ○ 팸플릿 수록 내용 '춤, 그 신명'은 1982년 한국무용연구회 창립 1주년을 맞아 4월 27일부터 5월 1일까지 국립극장 실험무대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당시 회장이었던 김매자(창무예술원 이사장)를 중심으로 김정녀(이매방류 살풀이춤 전수조교), 故 정재만(승무 예능보유자), 임학선(성균관대 교수)이 공동으로 창작했고, 채희완(춤비평가)이 농악판을 기본 틀로 제시했다. 이 작품은 당시 세간의 큰 관심을 받았다. 1980년대 초반에 한국인이 표현하고 추어야 할 춤을 보여주겠다는 주제의식, 무대를 프로시니엄 무대가 아닌 마당판으로 무대를 설정한 점, 집단창작으로 진행된 점 등이 춤계에서는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이다. '춤, 그 신명'은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객석으로부터 등장하여 춤판이 시작됐고, 무용과 출신 여성 춤꾼들과 탈춤반 출신 남성 춤꾼들이 출연했다. 곱고 예쁜 춤이 아니라 가공되지 않은 춤, 원초적인 힘과 자유롭고 편안한 기운으로 추는 춤을 추구했다. 그리고 후반의 개인놀이에서 신명으로 달아오른 춤꾼들의 거침없는 춤은 춤꾼과 관객 모두를 무아지경(無我地境)으로 이끌었다. 한국 창작춤이 1970년대 후반에 태동한 이래, 1982년은 한국 창작춤의 어린 꽃이 막 피기 시작한 시기였으므로, 역사와 민중을 포괄한 '춤, 그 신명'의 내용과 형식에 춤계 안팎의 모든 인사들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후 1986년 창무회 10주년을 기념하며 김매자의 주도하에 창무회 춤꾼들에 의해 재연되면서, '춤, 그 신명'은 창무회의 대표작이 되었다. 춤의 정신은 무엇이며, 무엇을 어떻게 출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했고, '신명이란 놀이정신이라는 미의식이 솟구칠 때 나타내는 억압, 고통, 미움, 헤어짐, 죽음 등 삶의 비(悲)극적인 것을 희(喜)극적으로 해체시켜 모든 어려움과 흥겨움에서 자유로워지는 상태를 일컫는 것이다.'라 규명했다. 그리고 춤에 이 신명을 담았으니, 남녀노소, 지위와 빈부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이 춤과 신명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고, 춤과 신명을 통해 자유로움을 만끽하도록 인도했다.

○ 지도/김매자(창무예술원 원장) ○ 훈련지도/김미선 ○ 춤/백진희·이지연·김영신·김태훈·박성호·이지은·백미진·이주리·서희정·권문숙·박민지·박상주·이하경 ○ 반주/음악집단 '이야' - 김재철·김수보·최영석·타무라료(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