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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전승음악 악보: 해금 정악보[2015.12.31.] - 16. 여민락만(경록무강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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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 분류정악>기악>여민락>여민락만 
  • 기록 일시2015-12-31
  • 기록 장소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
  • 소장처국악아카이브실
  • 기록유형음향
  • 저장매체스토리지

내용

○ 국립국악원 전승음악 악보: 해금 정악보[2015.12.31.]의 여민락만의 첫 번째 음원 ○ 수록내용 세종27년(1445) 4월 우찬성(右贊成) 권제(權踶, 1387~1445), 우참찬(右參贊) 정인지(鄭麟趾, 1396~1478), 공조참판(工曹參判) 안지(安止, 1377~1464) 등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어 올렸는데, 용비어천가에는 국한문 가사와 순한문 가사 두 가지가 있었고, 총 125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에서 한문 가사로 된 용비어천가의 수장, 2장, 3장, 4장 및 졸장만 노래하는 것을 <여민락>, 용비어천가 국한문 가사의 졸장(125장)만 노래하는 것을 <치화평(致和平)>, 용비어천가 국한문가사 전편을 노래하는 것을 <취풍형(醉豊亨)>이라고 한다. 세종 때 만들어진 정재 <봉래의(鳳來儀>에서 <여민락>이 연행되었다. <여민락>의 창작 경위는 『세종실록(世宗實錄)』권140과 이익(李瀷, 1681~1763)의 『성호사설(星湖僿說)』권13에 등장하는데 이 내용에 따르면, <여민락> 창작을 위한 참고 음악 중 하나인 ‘고취악’, ‘황풍악’ 모두 중국의 음악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여민락>이 중국의 음악에 바탕을 두고 향악의 특징을 일부 취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여민락 만>의 가사로 삼은 용비어천가 제1장은 그대로 1장, 2~4장은 각각 2장씩이 되고 마지막 125장은 3장으로 나누어 총 10장을 이룬다. 이를 상칠장(上七章) 하삼장(下三章)이라고도 한다. <여민락>을 수록한 최초의 악보인 『세종실록악보』에는 한 가지의 <여민락> 악보가 수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여민락만>과 <여민락령> 두 종류의 여민락이 연주되었다. 만과 령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체로 만은 그 속도가 느리고 가락이 적고, 령은 만보다 속도가 좀 빠르고 가락이 복잡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재는 향악기 중심의 관현합주에 의한 <여민락>과 당악기 중심의 <여민락만>과 <여민락령> 외에 <여민락령>을 변조한 <해령>, 총 4곡이 전승되고 있다. 이 중에서 『세종실록악보』에 전하는 여민락이 바로 현행 <여민락만>에 해당된다. 『세종실록』, 『단종실록』 등의 기록에 따르면, <여민락>은 임금의 출궁과 환궁 및 사신행차 때 행악으로도 사용되었고, 문소전의 제향 의식과 궁중 연향에서도 연주된 것으로 나타난다. 아명으로 <여민락만>을 <경록무강지곡(景籙無彊之曲)>이라고 하고, 줄여서 그냥 <만>이라고도 한다. <여민락만>은 당피리 중심의 음악으로 악기 편성은 편종·편경·당적·대금·당피리·해금·아쟁·좌고·장구 등 관악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음계는 황·태·고·중·임·남·응의 7음음계로, 각 장은 황종(黃鐘) 또는 중려(仲呂)로 종지하고, 마지막 10장은 황종(黃鐘)으로 종지한다. <여민락만>은 장구 반주가 있지만, 장구의 가락이 불규칙하고 일정하게 반복되는 장단의 단위가 없는 불규칙 무(無)장단 음악이다.

○ 연주/국립국악원 정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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