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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전승음악 악보: 해금 정악보[2015.12.31.] - 15. 정동방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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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 분류정악>종교음악>기타>정동방곡 
  • 기록 일시2015-12-31
  • 기록 장소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
  • 소장처국악아카이브실
  • 기록유형음향
  • 저장매체스토리지

내용

○ 국립국악원 전승음악 악보: 해금 정악보[2015.12.31.]의 정동방곡의 첫 번째 음원 ○ 수록내용 <정동방곡>은 조선 초기 만들어진 대표적인 향악곡 중 하나이다. 태조(太祖)의 무공(武功)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지은 악장(樂章)에 고려가요 <서경별곡(西京別曲)> 선율의 일부를 붙인 것이다. 이 악보는 『대악후보』(1795)에 전한다. 조선 초기 <정동방곡>은 연향악으로 사용되었다. 『세종실록』 권54에 기록된 회례의주(會禮儀注)에는 임금에게 마지막 술잔을 올리고 술안주인 대선(大膳)을 바칠 때 <정동방곡>을 연주했다고 전한다. 이 외에도 『숙종실록(肅宗實錄)』과 『영조갑자진연의궤((英祖甲子進宴儀軌)』(1744)에는 탕(湯)을 올리는 절차인 진탕례(進湯禮)에 <정동방곡>이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영조 이후의 문헌에서는 연향악으로서 <정동방곡>이 연주된 사례는 찾아 볼 수 없다. 한편 <정동방곡>은 조선시대 여러 제향에서도 활용되었다. 세종 대에는 태조(太祖)와 태종(太宗)의 제향에 종헌악(終獻樂)으로 연주되었고, 성종 대에는 태종(太宗)·세종(世宗)·세조(世祖)·예종(睿宗)의 위패를 모신 문소전뿐 아니라 그들의 비(妃)를 모신 혼전(魂殿)에서도 종헌악으로 쓰였다. 이외에도 『세종실록』 권89에 기록된 ‘둑제의주(纛祭儀注)’에 의하면 철변두(徹籩豆) 절차에서 <정동방곡>을 연주하였다고 전한다. 이처럼 제향악으로서의 <정동방곡>은 임진왜란으로 문소전이 사라지고, 1910년 한일합방으로 둑제(纛祭)가 폐지된 후 연주되지 않았다. 현재 전승되는 <정동방곡>의 최근 기록은 1930년대 만들어진 『이왕직아악부 오선악보』이다. 이 악보에서 보이는 <정동방곡>의 악기 편성은 대금·당피리·해금·아쟁·절고·편종·편경으로 오늘날과 유사하다.

○ 연주/국립국악원 정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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