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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전승음악 악보: 해금 정악보[2015.12.31.] - 12-01. 종묘제례악 ’보태평지악(희문·기명·귀인·형가·집녕·융화·현미·용광정명·중광·대유·역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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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 분류정악>종교음악>종묘제례악>보태평 
  • 기록 일시2015-12-31
  • 기록 장소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
  • 소장처국악아카이브실
  • 기록유형음향
  • 저장매체스토리지

내용

○ 국립국악원 전승음악 악보: 해금 정악보[2015.12.31.]의 종묘제례악의 첫 번째 음원 ○ 수록내용 <종묘제례악>은 조선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神位)를 모신 종묘(宗廟)의 제례에 사용되는 악곡이다. 조선 초기에는 아악곡 선율도 포함되었으나, 세조 대 이후 오늘날과 같은 향악곡으로 연주되었다. <종묘제례악> 중 ‘정대업(定大業)’·‘보태평(保太平)’은 세종 29년(1447) 당시 고려가요(高麗歌謠)로 전하는 고취악(鼓吹樂)과 향악(鄕樂)을 바탕으로 창제되었다. 악장(樂章)은 조종(祖宗)의 무공(武功)을 칭송하는 ‘정대업’과 문덕(文德)을 찬미하는 ‘보태평’이 내용상 짝을 이룬다. 이 때 ‘정대업’은 남려궁(南呂宮) 계면조(界面調) 15곡, ‘보태평’은 임종궁(林鐘宮) 평조(平調) 11곡으로, 조회(朝會) 및 회례연(會禮宴)의 무용 반주로 쓰였다. ‘정대업’과 ‘보태평’은 세조대에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며 많은 변화를 거쳤다. 세조 10년(1464) 제례악으로 사용하기 위해 ‘정대업’과 ‘보태평’을 각각 11곡으로 구성하였고, 악조 역시 각각 청황종궁(淸黃鐘宮) 계면조와 평조로 고쳤다. 특히 ‘보태평’ 중 희문(熙文)은 청황종궁에서 협종궁(夾鐘宮)으로 옮겨 원구제례악(園丘祭禮樂)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세조대에는 제례악곡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 악곡을 더하였는데, 진찬(進饌)의 ‘풍안지악(豊安之樂)’, 철변두(徹籩豆)의 ‘옹안지악(雍安之樂)’, 송신(送神)의 ‘흥안지악(興安之樂)’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 악곡은 이름만 다를 뿐 모두 동일한 선율로 이루어져 있다. 이후 <종묘제례악>은 조선의 역사와 함께 전승되었다. 인조 3년(1625)년 <보태평>에 선조가 임진왜란을 치룬 것을 칭송한 <중광(重光)>이 첨가되고, <용광(龍光)>과 <정명(貞明)>이 하나의 악곡으로 합쳐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정대업>·<보태평>의 악곡명이 각각 ‘향만년지악(享萬年之樂)’과 ‘보태화지악(保太和之樂’>으로 개칭(改稱)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더불어 순조 이후 리듬이 자유로워져 오늘날에는 불규칙 박자로 연행되고 있다.

○ 연주/국립국악원 정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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