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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전승음악 악보: 해금 정악보[2015.12.31.] - 03-08. 영산회상(중광지곡)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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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 분류정악>기악>영산회상>현악영산회상>타령 
  • 기록 일시2015-12-31
  • 기록 장소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
  • 소장처국악아카이브실
  • 기록유형음향
  • 저장매체스토리지

내용

○ 국립국악원 전승음악 악보: 해금 정악보[2015.12.31.]의 영산회상(중광지곡)의 여덟 번째 음원

○ 수록내용
<영산회상>은 오늘날 전승되는 풍류음악의 대표적인 기악곡이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악학궤범(樂學軌範)』(1493) 권5의 「시용향악정재도설(時用鄕樂呈才圖說)」에 따르면 <영산회상>은 학연화대처용무합설을 연행할 때,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相佛菩薩)’이라는 가사가 있는 성악곡으로 불렸다고 기록되었다. 그리고 세조대의 음악을 실은 『대악후보(大樂後譜)』(1759)에도 ‘영산회상불보살’의 가사와 함께 선율이 기록되어 있다. 이후 성현(成俔)이 지은 『용재총화(慵齋叢話)』(1525) 권1에도 여기(女妓)들이 원을 그리고 빙빙 돌면서 대열을 갖추며 ‘영산회상불보살’을 제창하였는데, “마치 승려들의 공불(供佛)을 모방한 듯하다.”고 하였다. 이로 볼 때 조선 초기 <영산회상>은 성악곡으로 무용과 함께 불렸으며, 불교적 색채가 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를 거치면서 <영산회상>은 성악곡에서 기악곡으로 변화하였다. 기악화된 이래 <영산회상>의 음악적 발전은 더욱 가속화되었는데, 그 결과 <상령산>에서 여러 파생곡들이 출현하게 된다. 이와 같은 변화를 통해 <영산회상>은 느린 20박의 <상령산>으로부터 점점 한배가 빨라지는 구조의 모음곡이 되었다.
오늘날 연주되는 <영산회상[重光之曲])은 거문고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거문고회상>이라고도 한다. <영산회상>은 <상령산>·<중령산>·<세령산>·<가락덜이>·<삼현도드리>·<하현도드리>·<염불도드리>·<타령>·<군악>의 아홉 곡으로 되어 있으며, 이렇게 아홉 곡을 연주하는 것을 <민회상>이라 한다. 그리고 <영산회상> 다음에 <계면가락도드리>·<양청도드리>·<우조가락도드리>의 세 곡을 연이어 연주하는 것을 <가진회상> 이라고 한다.

○ 연주/국립국악원 정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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